2013년 10월 3일 목요일

이자랑 수업 발표자료들

난죠 분유와 일본 불교문헌학의 태동
 
한국불교융합학과
요경(정경숙)
 
目 次
. 머리말
. 불교 유학생 파견의 배경
. 난죠 분유와 막스 뮐러
. 막스 뮐러본 금강경
. 일본 불교학에 미친 영향
. 맺음말
 
. 머리말
필자가 난죠 분유를 알게 된 것은 금강경 관련 논문을 쓰게 되면서다. 이런 저런 텍스트들을 읽으면서 한번 이상은 그 이름을 스쳤을 지도 모르지만 뇌리에 새겨진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금강경 관련 논문은 조계종 표준 금강경 편찬 사업이 완료된 뒤 이루어졌다. 사업의 핵심은 한문본과 한글본을 표준화하는 작업이었고 그 과정 속에 범본 금강경의 참조는 자연스런 것이었다. 유통되고 있는 범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콘제의 금강경이고 그것의 저본으로 사용된 것이 막스 뮐러(Friedrich Max Müller: 1823-1900)가 출판한 금강경이다. 그런데 국내에서 막스 뮐러의 금강경 범본을 구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뮐러본 금강경을 입수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난죠 분유란 메이지 시대의 불교학자와 조우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근 현대사를 돌이켜 보면 일본이 근대화 되던 과정을 20년 뒤에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유구한 역사에서 20년은 그다지 많아보이지는 않지만 지난 100여 년간 벌어졌던 역사적 사실들이 두 나라에서 있었던 다 방면의 사건들을 반추하게 만든다. 그 한 면이 근대불교학의 수용이라는 것으로 현재의 불교학을 하는 우리들에게 불교문헌학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 불교 유학생 파견의 배경
미국의 페리제독에 의해 일본의 막부는 18543월 가나가와 조약에 서명하게 되었고 일본은 개항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이 조약은 칙허 없이 처리한 막부(幕府)의 독단적 처사였으므로 반막부세력(反幕府勢力)이 일어나 막부와 대립하는 격동을 겪었다. 그러다가 700여 년 내려오던 막부가 1866년 패배하였고, 1867년에는 대정봉환(大政奉還) ·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 메이지 정부는 학제 · 징병령 · 지조개정(地租改正) 등 일련의 개혁을 추진하고, 부국강병의 기치하에 구미(歐美) 근대국가를 모델로, 국민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는 관주도(官主導)의 일방적 자본주의 육성과 군사적 강화에 노력하여 새 시대를 열었다.
메이지 초기, 일본 불교는 정부의 신도 국교화 정책 및 공격적인 기독교 선교, 서구문물의 유입 속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1871년 당시 실권자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는 직접 구미시찰단 특명전권대사가 되어 110개월간 유럽을 순방하며 서양문물을 체계적으로 받아들이고 영국 기술자까지 대량으로 초빙, 과학기술의 기초를 쌓았다. 이러한 변화는 불교계의 각성을 촉구하게 되었고 19721西本願寺는 정부의 시찰단과는 별개로 구미 시찰단을 파견하게 되었다. 동년 9월에는 東本願寺(대곡파)가 시찰단을 파견하게 되었는데 이 때 오타니 고우에이(大谷光瑩)가 대표가 되어 이듬해 7월까지 서구의 종교사정을 시찰하는 주요한 일을 담당하였다.
이들의 여행이 유학생 파견으로 이어지게 된 것은 한 프랑스 도서관에서 산스크리트 경문을 일람한 일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에는 포트 윌리엄 대학의 재정 지원을 받은 브라이언 허그슨(Brian Houghton Hodgson, 1800~1894)이 네팔에서 보내온 많은 산스크리트 문헌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허그슨이 수집한 423종의 산스크리트 문헌은 옥스퍼드와 파리, 런던 등에 보내졌고 그 가운데 147종이 뷔르누프(Eugene Burnouf, 1801~1852)에게 보내졌다.
고우에이 일행이 프랑스 어느 도서관에서 어떤 산스크리트문헌을 보았는지는 나중에도 거의 언급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이 이때 충격으로 느낀 것은 유럽에 산스크리트 문헌이 존재한다는 것과 이것이 유럽학계에서 심도 깊게 연구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귀국 후 전문적으로 이를 연구할 유학생을 파견하고자 종단차원에서 계속 인선을 추진하였다고 한다. 이 때 선출된 사람이 바로 난죠 분유(南條文雄: 1849~1927)과 카사하라 겐쥬(笠原硏壽: 1852~1883)였다.
이 두 사람은 전문적인 불교 연구자가 아닌 승려이면서 일종의 종무원이었다. 동본원사에서 그들을 선발할 때는 불교의 지식보다는 종단의 발전과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고려해서 뽑은 것 같다. 카사하라는 불어를 조금 할 정도였고 난죠는 외국어는 전혀 문외한이었다.
그들이 영국을 향해 일본을 떠난 것은 1876613일이었으며, 요코하마 항에서 출발한 유럽까지의 경로는 홍콩, 사이판, 싱가폴, 콜롬보, 아덴, 그리고 이집트의 포트사이드, 메플 등을 경유해서 프랑스 마르세유항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육로로 파리에 가서, 811일에 드디어 런던에 도착하였으니, 거의 두 달만의 여정이었다. 그 때 난죠의 나이 28세였고, 카사하라는 세 살 아래인 25세였다.
동본원사의 난죠 분유와 카사하라가 사실 불교계 최초의 구미유학생은 아니었다. 1872년 서본원사파 구미시찰단 중 아카마츠 렌조(赤松連城), 호리카와 쿄아(堀河敎阿), 미츠다 이넴(光田爲然)은 이 종파의 제1회 해외유학생으로 동행한 것이라 전한다. 이처럼 동본원사의 난죠 분유 이전에도 구미에 파견된 유학생은 몇몇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서구 근대불교학을 수용하고 활동한 사람은 그 이전에 아무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난죠 분유가 근대 일본불교의 최초 유학생이라고 할 때, 불교 연구자로서 최초유학생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 난죠 분유와 막스 뮐러
난죠와 카사하라가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뮐러를 만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런던에 3년 정도 있으면서 영어를 익히고 있었다. 난죠는 뮐러를 만나기 전 리즈 데이비스를 만났는데 그는 난죠에게 팔리어를 배워 볼 것을 권유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난죠의 유학 목적이 산스크리트의 습득에 있었으므로 이를 거절하였다.
18791월 당시 주영공사 우에노 카게노리(上野景範)를 통해 목사 브룩스를 만나게 되고 다시 웨스트민스터 사원 학장인 스탠리를 만난다. 스탠리는 뮐러의 친구였기 때문에 이들에게 소개서를 써주었다. 난죠가 옥스퍼드로 뮐러를 직접 찾아 간 것은 18792월의 일이었다.
뮐러를 만난 두 사람은 산스크리트를 배우겠다는 의지를 피력했고 뮐러는 옥스퍼드로 와서 공부해도 좋다는 허락을 했다. 그들은 처음에 맥도넬(Arthur Macdannell)이라는 젊은 학자로부터 산스크리트의 기초를 배웠고 1년 뒤에 뮐러에게 직접 체계적인 지도를 받았다.
난죠가 뮐러를 찾아간 시점인 1879년은 그가 옥스퍼드 대학교수직에서 은퇴하고 동방성서(The Sacred Bllks of the East)시리즈를 출간하기 시작한 해이다. 막스 뮐러는 19세기에 활동한 다재다능한 학자이면서 문학가, 예술가, 종교가였다. 그는 桂冠詩人인 아버지 빌헬름 뮐러(Wilhelm Müller)와 어머니 아델하이드(Adelheid)의 독자로 독일의 Dessau에서 태어났다. 막스 뮐러가 고국인 독일을 떠나 영국에 정착해 귀화인의 삶을 살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우파니샤드에 있었다. 인도 고대 종교 서사시에 매료되어 타국에서 학자의 길을 선택하게 한 인도의 사상은 후에 그가 비교 종교학의 창시자로서 이름을 알리는 동기가 되었다. 막스 뮐러는 다양한 종교에 대한 근원을 고민했고 그 해답을 언어에서 찾으려 했다. 그의 초기 학문의 기초가 언어학에서 출발하여 리그베다를 통해 종교로 이어지는 여정은 둘의 관계가 필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게 한다.
뮐러는 난죠와 카사하라를 만나자마자 그의 오래된 소망인 일본의 산스크리트 사본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 난죠는 동본원사 교사 구리하라 시게휴(栗原重冬)에게 의뢰했고, 그는 야마토와 카와치 지역 등의 사찰에서 에도시대 1773년 간본인 범본 아미타경, 高貴寺 소장 패엽 금강경, 如願寺 소장 패엽 보현행원찬, 法隆寺 소장 패엽 반야심경 그리고 佛頂尊勝陀羅尼經 등을 발견하고 그것의 필사본과 촬영본을 보내주었다.
사본을 받은 뮐러는 18804월 범본 아미타경을 왕립 아시아협회지에 영역과 함께 발표하고 다음 해에는 금강경을 교정하여 출판하였다. 1883년에는 무량수경 아미타경을 그 다음해에는 반야심경과 불정존승다라니의 산스크리트 교정과 영역본을 발표하였다.
막스 뮐러의 이러한 산스크리트 관련 출판은 뷔르누프의 법화경 출판 이후의 드문 대승경전에 대한 연구 성과였다. 이전의 불교학자들의 문헌연구는 주로 팔리어로 이루어진 남방불전에 치우쳐 있었는데, 뮐러가 일본 등지에서 입수한 산스크리트 관련 대승경전들의 편찬을 계기로 본격적인 대승경전 연구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 막스 뮐러본 금강경
금강경사본에 대한 연구는 막스 뮐러가 1881년 처음 금강경을 데바나가리로 출판한 것을 시점으로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과학적인 사고를 중요시하는 서양에서 금강경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가지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금강경이 한역의 경우 30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동안 6명의 역장들에 의해 8종류의 번역본이 현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티베트어와 몽고어 및 코탄본의 금강경이 존재하기 때문에 문헌학적이고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연구 소재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범본 금강경의 경우 고대의 사본들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도 고대 언어와 연관되어 사본의 최초 필사된 지역과 시기들의 연구가 인도 역사 속의 단편적인 서술들과 맞물려 흥미로운 사실들을 양산하고 있다. 고대의 간다라 지역에서 대량 발견된 불교 문헌들은 대승불교의 흥기와 관련된 미스터리한 불교적 사건을 푸는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연구들의 바탕에 금강경은 내용적인 면과 문헌적이고 언어학적인 면에서 학자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다음의 목록들은 현재까지 출판되거나 연구된금강경범본 관련 저술들이다. 이 목록들은 폴 해리슨(Harrison, Paul)과 와타나베(渡辺 章悟: Watanabe Shōgō)의 공동 연구물인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BMSC vol. III’에서 일부 문헌들에 대한 정확한 서지 사항들을 참고하였다.
 
1. F. Max Müller, ed., 󰡒Vagrakkhedikâ[=Vajracchedikā],󰡓 in Buddhist Texts From Japan(Anecdota Oxoniensia, Arian Series Vol.1, Part 1), Oxford, 1881, pp.15-46.
2. E. F. Pargiter, ed., 󰡒Vajracchedikā in the Original Sanskrit, Stein MS., No. D..13b,󰡓 in Manuscript Remains of Buddhist Literature Found in Eastern Turkestan, ed. by A. F. Rudolf Hoernle, Oxford, 1916, pp.176-195.
3. N. P. Chakravarti, ed., 󰡒The Gilgit Text of the Vajracchedikā,󰡓 in Minor Buddhist Texts(SOR . 1), ed. by G. Tucci, Rome, 1956, pp.173-192.
4. E. Conze, ed.,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Edited and Translated with Introduction and Glossary(SOR XIII), Rome, 1957, 2nd edition, with Correction and Addition, Rome, 1974.
5. N. Dutt, ed., Gilgit Manuscripts, Vol., Calcutta, 1959. Reprint: Bibliotheca Indo-Buddhica 24, Delhi, 1984, pp.139-170.
6. P. L. Vaidya, ed., 󰡒Vajracchedikā nāma Triśatikā Prajñāpāramitā󰡓 in Mahāyāna-sūtra-saṃgraha, Part 1(BST 17), Darbhanga, 1961, pp.75-89.
7. L. M. Joshi,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sūtrā with the Commentary of Asaṃga, Critically edited and translated into Hindi with Introduction, Notes and Glossary(Bibliotheca Indo-Tibetica 3), Varanasi, 1978.
8. G. Schopen, 󰡒The Manuscript of the Vajracchedikā Found at Gilgit,󰡓 in Studies in the Literature of the Great Vehicle: Three Mahāyāna Buddhist Texts, ed. by L. O. Gómez and J. Silk, Ann Arbor, 1989, pp.89-139.
9. Rushi foxue yanjiushi 如實佛學硏究室, ed. Jingang borue boluomi jing 金剛般若波羅蜜經, 5 vols., Taipei, 1995-1996. The edition of the Sanskrit text occupies Vol. 3. pp.1-64.
10. Harrison, Paul & Watanabe, Shōgō,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BMSC vol. III, Hermes Publishing Oslo. 2006.
11. Harrison, Paul, 󰡒Sanskrit Fragments of the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in the British Library󰡓, The British Library Sanskrit fragments : Buddhist manuscripts from Central Asia v.2.1: Texts,/ Editors-in-chief : Seishi Karashima and Klaus Wille, Tokyo: The International Research Institute for Advanced Buddhology, Soka University, 2009.
12. 渡辺 章悟(Watanabe, Shōgō),金剛般若經硏究, 山喜房, 2009.
 
현재까지 발견된 고대 사본들의 종류와 특성들에 대한 검토를 마쳤지만 사실 이러한 사본들의 발견에 촉매제로서의 역할은 막스 뮐러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초로 발견된 동투르키스탄의 사본 속에서 금강경을 해독하는 데 기여한 회른네는 데바나가리로 출판된 막스 뮐러 금강경의 도움으로 흐트러진 사본들의 위치를 바로 잡는데 그다지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빠르기터에 의해 출판된 동투르키스탄 사본도 막스 뮐러본을 참고하여 유실되거나 부정확한 곳들을 보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발견된 길기트 사본 속의 금강경을 처음으로 로마자로 출판한 차크라바르티도 막스 뮐러의 금강경을 참고하였다. 이후에 출판된 범본들 가운데 뮐러본에 충실하게 텍스트를 구성한 것은 콘제의 금강경이라 할 수 있다. 콘제는 막스 뮐러본을 저본으로 빠르기터와 차크라바르티에 의해 로마나이즈해서 출판된 금강경들과의 대조를 꼼꼼하게 주석을 통해 밝히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현재 유통되고 있는 금강경의 저본은 막스 뮐러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막스 뮐러는 어떻게 그의 금강경범본을 출판하게 되었을까?
 
(1) 막스 뮐러본 금강경所在
 
필자는 이 점이 금강경을 공부하면서 항상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막스 뮐러본의 금강경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뮐러의 금강경에 대한 서지학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콘제 참고 목록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sūtra, ed. M. Müller Anecdota Oxoniensia, Arian Series, Vol. 1, Part 1, 1881. Text pp.19-46.
 
그런데 이러한 정보로 동국대학교를 비롯해 국내 및 해외 거의 모든 도서관을 검색해도 발견이 되지 않는다. 뮐러본 금강경에 대한 실마리를 풀게 된 것은 가장 최근에 발견된 금강경사본에 대한 연구 논문을 입수한 뒤의 일이다. 바미얀에서 발견된 고문서 연구에 착수한 오슬로 대학에서 출간한 BMSC Series III권속에 들어 있었다. 폴 해리슨과 와다나베 쇼고의 공동 연구물 속에 금강경범본 관련 출판 목록에 뮐러본 금강경의 다음과 같은 서지 사항이 들어 있다.
 
F. Max Müller, ed., 󰡒Vagrakkhedikâ[=Vajracchedikā],󰡓in Buddhist Texts From Japan(Anecdota Oxoniensia, Arian Series Vol.1, Part 1), Oxford, 1881, pp.15-46.
 
뮐러본 금강경‘Buddhist Texts From Japan’ 라는 이름으로 출판된 서적의 일부분이고 제목도 콘제의 참고문헌속의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sūtra가 아닌 Vagrakkhedikā 였다. ‘Buddhist Texts From Japan’의 주제어로 검색을 하다 보니 동경대학 도서관에 이 책이 보관되어 있다.
막스 뮐러본 금강경편찬과 관련된 사항은 위에서 밝힌 ‘Buddhist Texts From Japan’ 과 다음의 서적들을 참고하였다.
 
南條文雄 (1905), 梵文金剛講義, 東京: 光融館.
宇井伯壽 (1990[c1963]), 大乘佛典硏究, 東京: 岩波書店, pp.3-6.
Sakurai Michiko(櫻井 美智子)
1976 Max Müller 管見: 言語研究史からみて, Essays and Studies 27(1), Tokyo Woman's Christian University, pp.41-57.
1980 Western Influence on Our Linguistic Study in the Meiji Era, Publications of the Institute for Comparative Studies of Culture affiliated to Tokyo Woman's Christian College 4, Tokyo Woman's Christian University.
Okukaze Eiko(奧風 栄弘) (2008), New Sanskrit Manuscripts of the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Preserved in Kokiji Temple [in Japanese: 高貴寺蔵新出梵文金剛般若経写本について], Journal of Indian and Buddhist studies 57(1), pp.422-419.
Harrison, Paul & Watanabe, Shōgō (2006), “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BMSC vol. III, Hermes Publishing Oslo.
渡辺 章悟(Watanabe Shōgō)
2009 金剛般若經硏究, 東京: 山喜房.
2009 金剛般若經梵語 資料集成, 東京: 山喜房.
 
(2) 막스 뮐러본 금강경의 편찬 과정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막스 뮐러가 금강경범본을 편찬해 내는 과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사진 1] 범학진량본문
막스 뮐러는 1881년 출판한 Buddhist Texts From Japan 서문에서 금강경을 포함한 다른 경전의 사본들을 입수하게 된 경위에 대해 밝히고 있다. 금강경범본의 저본으로 사용된 사본들은 4종류이다. 오사까의 高貴寺에 보존되어 있던 범학진량(梵學津梁)320권 속의 금강경범본 관련 두 개의 필사본과 중국으로부터의 두 개의 목판본이 그것이다. 일본에서 온 두 개의 필사본은 궁극적으로 동일한 기원에서 복사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하나의 저본으로 사용될 수 있다. 그 기원은 유명한 慈雲飮光(Jiun Onkō 1718-1804)에 의해 편집된 범학진량 320梵文金剛般若經諸譯互證속에 들어 있는 범본이다. 위의 사진 속의 범학진량과 비슷하게 금강경한문이 오른쪽 세로단에 범어로 왼쪽에는 한문의 음성표기와 함께 쓰여졌고 다음 두 줄의 세로단에는 구마라집과 달마굽타의 한문번역이 뒤따른다. 2008년 발표된 奧風 栄弘(Okukaze Eiko)高貴寺蔵新出梵文金剛般若経写本について논문을 참조하면, 범학진량 속의 범어의 구성과 형태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뮐러가 입수한 복사본 가운데 하나는 18809월에 金松空賢( Kanematsu Kuken)에 의해 필사되었고 알렉산더 윌리(Alexander Wylie)가 일본에서 영국으로 가져온 다른 범어 관련 자료들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두 번째는 (거의 동시대로 추정되는) 고귀사의 伎人戒心(Kurehito Kaishin)에 의해 필사된 것을 어니스트 새토우(Ernest Satow)가 뮐러에게 보낸 것이다. 이것은 가로로 쓰여진 범본만이 유일하게 포함되어 있다. 이 두 저본의 범본은 동일한 것에서 복사된 것이기 때문에 내용은 같다. 그것들은 뮐러의 금강경속에서 참고본으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각주 속의 J가 그것이다.
중국으로부터 온 두 개의 목판본에 대해 말하자면, 하나는 아마도 1760년 북경 숭축사(嵩祝寺)에서 목판으로 인쇄된 것이다. 이 판본 속에 범본은 실담문자와 티베트어로 전환된 것 둘 다에 나타나는데 북경의 Chos 'khor rab rgyas gliṅ에서 청나라 건륭황제의 통치 기간 주장관인 ICaṅ skha II Rol pa'i rdo rje(1717-86)의 주술사들 아래에서 일하는 화공인 Dam pa에 의해 만들어진 티베트 번역을 덧붙여왔다. 이것이 티베트 사본이다. 각주 속의 T가 그것이다.
뮐러 금강경범본의 다른 저본은 뮐러가 범본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영국의 수집가 알렉산더 윌리가 북경에서 입수한 목판인쇄물을 보내온 것 속에 포함되어 있다. 뮐러본 금강경각주 속의 Ch가 그것이다. 이 범어 전적은 작은 사절지에 붉은 색 잉크로 목판으로 인쇄된 것이다. 처음이 금강경이고 다음은 관음경, 반야심경, 아미타경과 다수의 다라니들로 구성되어 있다. 뮐러는 이 인쇄물을 받고 적지 않게 놀랐다. 그것은 그가 아는 한 유럽에 온 유일한 중국 인쇄의 범어 서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에는 여전히 많은 범어 불교 사본들이 존재하고 있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뮐러의 금강경범본 편찬과정 속에서 일본인 제자 두 명의 도움을 언급하고 있다. 1876년에 산스크리트를 배우기 위해 옥스퍼드로 유학 온 일본인은 南條文雄(Nanjo Fumio: 1849-1927)笠原硏壽(Kasawara Kenju: 1852-1883)로 막스 뮐러에게 산스크리트를 사사받으며 금강경을 범어로 복원해 내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들은 뮐러에게 금강경의 한문 이역본들을 제공하고 일본에서 건너온 두 개의 사본 속 일본어와 한문 관련된 사항들에 조언을 주었다.
[사진2] 막스 뮐러본 금강경범본
 
막스 뮐러의 금강경범본은 직접적인 저본인 중국의 목판본과 티베트본을 기초로 해서 일본에서 온 필사본을 참고로 편찬되었다. 문자는 데바나가리를 사용해서 위의 스캔화면과 같이 구성되었다. 본문은 소명태자의 32분단을 적용하여 각 분단의 끝에 범어로 표시를 하였다. 세 종류의 저본들에서 상위한 사항들은 각주를 통해 차이점을 밝히고 있다.
막스 뮐러의 금강경범본을 도출해 내기 위해서 사용된 세 가지 전거들은 현재 확인이 불가능하다. 만약 그것들이 존재 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막스 뮐러본이 신뢰를 받을 것이겠지만 아쉽게도 그의 사후 12,000권에 달하는 장서를 岩崎久彌가 구입해 1901년 동경대학에 기증했다. 그런데 1923년 관동 대지진때 동경대학 도서관이 화재를 입어 대부분의 서적들이 전소되었다. 막스 뮐러가 어렵게 입수했던 고대의 사본들도 모두 사라지게 된 것이다. 막스 뮐러의 금강경1894년에야 동방성서(Sacred Books of the East)에 영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Edward Byles Cowell, F. Max Müller and Takakusu Junjiro
1894, Sacred Books of the East Buddhist Mahāyāna Texts. Part 1. The Buddha-Karita of Asvaghosha, translated from the Sanskrit by E. B. Cowell. Part 2. The larger Sukhāvatī-vyūha, the smaller Sukhāvatā-vyūha, the Vagrakkedikā, the larger Pragñā-pāramitā-hridaya-sūtra, the smaller Pragñā-pāramitā-
hridaya-sūtra, translated by F. Max Müller. The Amitāyur dhyāna-sūtra, translated by J. Takakusu.
 
. 일본 불교문헌학에 미친 영향
난죠가 8년간 영국에 체류하는 동안 산스크리트 학습만 한 것은 아니었다. 1880년 뮐러의 직접적인 지도를 받으면서 틈틈이 런던 인도성 도서관에 비치된 황벽대장경의 교열과 목록 작업을 병행하였다. 황벽대장경은 명나라 萬曆版 대장경, 일명 嘉興藏을 복각한 것으로, 일본 황벽종 승련 데츠간(鐵眼)이 명나라 출신 스승 인겐(隱元)의 도움으로 1668년에 조성사업을 시작하여, 10년 만인 1678년에 완성한 전체 1,6187,334권의 一切經이다. 이와쿠라 사절단은 일본 문화의 자랑인 황벽대장경을 영국에 기증하였다.
이러한 대장경을 도서관에서 본 뒤 난죠는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또한 이 대장경에 대한 기존 목록이 비일(Beal)에 의해 1876The Buddhist Tripiṭaka , 불교삼장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긴 했지만 오류가 많고 불완전하였다. 난죠는 이러한 오류를 바로잡고 순서가 뒤바뀐 경전의 순서도 바로잡았다. 이 때 한역경전에 대한 산스크리트 제목을 각각 붙였다. 또한 역자, 번역연대 등을 첨가하였는데, 이것은 각 산스크리트 원전의 성립 연대를 추정하는데 있어서 기본적인 범위를 결정해 주는 기초자료가 되었다. 난죠는 1883년에 황벽대장경의 영문 목록집을 완성하였고 이를 옥스퍼드에서 출판하였다. 이 목록은 난죠 카달로그라고도 불리는 등, 유럽학계에 난죠의 이름을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막스 뮐러는 이 목록 출판의 학술적 가치를 인정하여 옥스퍼드로부터 석사학위를 수여 받도록 주선해 주었다. 난죠의 카달로그는 서구학자들로 하여금 한역불전의 연구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난죠와 카사하라는 뮐러의 주선으로 옥스퍼드를 떠나 유럽을 여행하면서 국제동양학대회에 참가하는 기회를 갖는다. 그들은 여행을 통해 유럽의 많은 문헌학자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특히 파리에서 한 달간 머물면서 산스크리트 사본의 필사를 하게 되었다. 난죠와 카사하라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필사에 전념하였다. 이 때 필사한 사본들은 飜譯名義大集佛所行讚 등이었다. 이외에도 유학시절 이들이 필사한 문헌들은 金光明經, 入楞伽經, 無量壽經, 法華經 등이 있었는데, 대개 주요 대승경전들이었다. 카사하라 혼자서 필사한 문헌은 法數明集經, 阿毘達磨俱舍論釋 등이었는데, 특히 방대한 양의 아비달마구사론석의 필사는 그가 귀국하기 전까지 병환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끝까지 이를 마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고 전한다. 카사하라는 폐병이 악화되어 18829월에 일본으로 귀국하게 되고 이듬해 입적하였다.
카사하라의 귀국 후에도 난죠는 일본에 계속 남아 황벽대장경의 연구와 뮐러와의 공동작업을 병행하였다. 그러나 그도 아버지의 죽음과 양모의 병환 소식을 접하고 귀국을 결심하게 되었다. 뮐러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난죠는 1884328일 런던을 떠나 미국을 경유하여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는 귀국 후 1885東京대학교 강사로 부임해 산스크리트 강좌를 처음 열었다. 문헌비평적인 산스크리트학을 일본에 최초로 도입하여 일본 산스크리트 불교학의 창설자로 평가된다. 이 학풍은 후배 다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郞: 18861945)에 의해 더욱 확고해졌다. 다카쿠스 준지로 등과 함께 대일본불교전서(151), 우파니샤드전서(9)을 출간하고 대정신수대장경의 편찬 사업에도 관여하였다.
. 맺음말
아무도 걷지 않았던 길을 걷는 것은 두렵고도 설레는 일이다.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 자신의 발자국을 다시금 살피게 된다는 것은 그 걸음이 의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살았던 일본의 난죠 분유는 서구의 불교학을 수용하려는 시대사조 속에서 본의 아니게 영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그는 분명 두렵고도 설레는 마음으로 유학길에 올랐을 것이다. 지금은 비행기로 하루면 갈 수 있는 거리를 두 달이나 걸려 겨우 런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시의 유럽은 불교문헌학의 발전과 고고학적인 발굴의 성과에 힘입어 불교에 대한 잘못된 시각들이 교정되면서 비교언어학과 비교종교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가 태동하고 있었다.
이러한 새로운 학문분야의 선구자인 막스 뮐러를 스승으로 맞아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산스크리트를 사사받게 된다. 난죠는 황벽대장경의 목록을 영문과 한문 및 산스크리트를 병기해 출판함으로써 유럽의 한문대장경 연구에 기여하게 되었다. 이것은 한문 문화권에서 학습했던 이력을 살려 서구의 문헌학 위주의 학풍에 신선한 바람을 제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난죠의 유학은 이처럼 일방적인 수혜로 끝난 것이 아니라 유럽의 불교연구자들에게 한문 대장경의 연구로 눈을 돌릴 수 있도록 물고를 트이게 한 공로도 있다. 또한 막스 뮐러에게 일본에 흩어져 있는 패엽경 속의 산스크리트 문헌을 제공해 줌으로써 공동으로 대승불전을 연구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다. 이러한 여타의 업적으로 일본인들은 난죠 분유를 최초의 유럽 불교유학생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난죠 분유는 귀국 후 동경 대학교에서 후학들에게 산스크리트를 가르치고 유학생활 동안 익혔던 서구 문물과 학풍을 소개함으로써 일본 불교문헌학의 기초를 다지고 불교학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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