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의 비석을 탑골공원에 세울 그 무렵(1970년 3월1일)에 경봉은 사람을 보내 한용운의 행장을 정리하여 보내 달라고 춘성에게 요청하였다.
이에 답한 춘성의 의미심장한 편지가 있다.
애국자의 역사와 비석은 나라를 위하고 우리들을 위하여 서대문 감옥에서 삼년간을 계실 때에 귀가 얼어 빠지고, 발가락이 얼어 빠진 것, 이것이 한용운 선생의 비석이요, 역사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삼월 일일을 당하여 독립기념식을 행할 때에 한용운과 백용성 그 두 분의 이름을 낭독할 때에 그 두 분 참석한 것이 불교의 광명이요, 불교의 서광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이것이 천지에 찬 비석이요, 천지를 울리는 땡땡 소리가 나는 비석이요, 역사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비석을 하시고 역사를 모집한다는 것이 한용운 선생을 위해서 좋은 예찬이오나 한로축괴韓盧逐塊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러하오나 선생을 위해서 기금을 그와 같이 모집하셨다고 하오니 너무나 감축하고 감사하옵니다.
춘성은 소위 제자라고 하면서 부끄러운 땀을 어찌 하오리까.성의껏 하십시오.
한용운 선생 열반 때에 신체는 화장을 모시옵고, 그때의 유골을 박광朴洸이라고 하는 사람이 무덤에 모신다고 하고서 모시고 망우리 고개로 모시고 가서 거기서 성분을 하고 모셨답니다.
안승철 선생이 금년 봄에 한용운 선생의 역사를 묻기에 답서를 아니하고 덮어둔 것이 이것입니다.
경봉당! 자네 들어보게. 경봉당이 물으니 내 되잖은 지견으로 사실을 적어 보냈으니 그리 아소
12월 10일
망월사 이춘성
만구성비萬口成碑라는 선가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백담사 회주인 조오현은 춘성이 한용운을 표현한 이 대목을 가장 즐겨 인용했다."만인의 입에서 자주 떠올리게 되는 그것이 곧 비석이며, 역사라는 것이다."
김광식 지음,춘성 무애도인 삶의 이야기,새싹 펴냄,147-8-9 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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