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재미난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프라다라는 명품 가방을 올리고 한 번은 상표를 떼놓은 뒤, 또 한 번은 상표를 붙인 채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더니 완전히 다른 반응이 나왔습니다. 상표를 붙이지 않았을 때는 ‘뭐 이런 싸구려 가방이 있냐’‘동대문에서 샀냐 남대문에서 샀냐’‘한 5만원이나 할까’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런데 프라다라는 상표를 붙이고 올려놓자 ‘와 멋지다. 간지난다’‘어디서 샀어요. 나도 갖고 싶다. 샤방샤방’‘역시 명품이라 그런지 뽀대 나네요’라는 반응으로 바뀌었습니다. 가방은 똑같은 가방인데 상표가 붙느냐 안 붙느냐에 따라 천지 차이가 난 겁니다.
사람들이 가방이라는 실제보다 어떤 상표가 붙었느냐 하는 이미지를 더 쫓는다는 말입니다. 프라다에서 만든 가방이 프라다라는 상표를 붙이지 않는다고 품질이 나빠집니까? 아닙니다. 가방은 가방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미지를 쫓습니다. 마치 불나방이 불을 쫓아다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이미지를 쫓다 보니까 짝퉁들이 나오는 겁니다. 짝퉁은 명품이 아닌데 명품처럼 거짓되게 꾸민 상품을 말합니다. 짝퉁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남들 따라 사는 2류인생이 다 짝퉁인 겁니다. 그러나 자기만의 길을 당당히 가면 그게 세상에 둘도 없는 명품이 되는 겁니다.
헛된 것을 쫓다 보니까 치장을 하는데 시간을 다 보내게 되지요. 환상을 쫓아서, 남 따라 살다 보니까 자기 얼굴도 연예인 얼굴처럼 되고 싶어 그 사진을 들고 성형외과에 가서 그대로 고쳐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모두들 그렇게 유행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니 이 사람이 저 사람 같고, 저 사람이 이 사람 같은 세상이 된 겁니다. 거품이 잔뜩 끼어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 성형한 얼굴보다 자연적인 얼굴인 ‘생얼’이 더 호평을 받습니다.
‘생얼’이 뭡니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겁니다.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평가 받는 것이죠. 달리 말하면 꾸미는 데 치중하기보다 내실을 구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프라다 상표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가방의 실제적 품질에 노력을 쏟게 되면 좋은 가방을 만들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남들처럼 상표나 이미지 쫓지 말고 자기만의 길, ‘생얼’의 길을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괜히 없는데 있는 척, 고상한 척, 성스러운 척 하지 말고 못나면 못난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보여주며 살자는 겁니다. 솔직하게 살자는 겁니다. 변소간을 아무리 금단청, 은단청을 해놓는다고 똥냄새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삶은 변소간처럼 살면서 화장을 덕지덕지해서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처럼 살 수는 없는 것이죠. 삶이 부처님 같아지면 누더기 옷을 입어도 성스러운 겁니다.
우리는 그동안 물질적 욕망과 외적 모습만 쫓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삶의 실질적 내용보다 헛된 이미지를 더 중요시하면서 살아왔습니다. 허상을 보고 달려온 것이나 다름이 없죠.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물질수준이 높아지면서 더욱 그렇게 됐습니다. 인간이 물질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인간을 부리고, 욕망이 인간을 부리는 사회로 전락한 겁니다. 내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유행따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체 길을 가는 겁니다. 마치 레밍이라는 쥐가 앞의 쥐만 쫓아가다 강물에 모두 빠져죽는 것처럼 이 길로 가는 것이 옳은가라는 물음, 성찰을 잃어버리고 욕망만을 쫓아온 겁니다.
http://1.224.163.147/bbs/board.php?bo_table=01_6&wr_id=621&page=
위 인용사이트에서 글을 일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지렁이가 왜 기는지 모른다면 레밍이라는 쥐가 왜 빠져죽는지도 모를 것이기에 이 인용은 이 강연에서 적절하지않았다는...물론 전체적으로 손뼉을 치면서 단지 작게 그냥 짚는 얘기일 뿐이다.
위 인용사이트에서 글을 일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지렁이가 왜 기는지 모른다면 레밍이라는 쥐가 왜 빠져죽는지도 모를 것이기에 이 인용은 이 강연에서 적절하지않았다는...물론 전체적으로 손뼉을 치면서 단지 작게 그냥 짚는 얘기일 뿐이다.
생소한 이 쥐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지난 1980년 4월 소위 ‘서울의 봄’ 무렵이다.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존 위컴은 한 미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은 레밍과 같아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면 그에게 우르르 몰려든다”고 말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장군’에게 많은 사람들이 줄 서는 현상을 빗댄 표현이었다. 감정이 상하기에 충분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당시 언론은 레밍을 ‘들쥐’라고 번역했다. 때문에 위컴 발언은 ‘한국인을 들쥐라고 비하했다’고 확대 해석되었다. 전후 사정을 잘 알지 못한 채 분노의 여론이 일제히 달아올랐음은 물론이다. 맹목적인 진짜 레밍들처럼….
레밍이란 쥐가 있다는 사실이 한국에 처음 알려진 건 1980년 민주화시위가 한창 때였다.
이 동물을 소개한 장본인은 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LA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다.
"한국인들은 레밍, 곧 들쥐의 근성이 있어 누가 파워를 잡게 되면 모두 그 권력자 중심으로 모이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누가 먼저 하면 너도 나도 따라하는 한국인들의 습성을 비꼰 것이다.
위컴의 이 한마디가 그해 정국을 들쑤셔 놨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직 멀었다고 비아냥댔으니 국민적 분노를 일으킬만 했다. 그의 예측대로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기는 했지만 '레밍'이란 단어 하나가 반미시위에 불을 지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동물계에서 가장 신비스런 현상의 하나가 바로 레밍의 습성이다. 이 들쥐는 3~4년을 주기로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먹이를 찾아 대이동을 한다. 방향을 틀 줄 모르고 오로지 줄지어 앞으로만 달리는 단순 동물이다.
선두 그룹이 냅다 뛰면 나머지 쥐들은 '저게 왜 뛰지'하며 '패닉' 곧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진다. 뒤에 선 레밍은 앞 선 무리가 뛰니까 뒤처지지 않으려고 더 뛸 수 밖에 없게 되고 또 이 바람에 앞에 선 그룹은 더 더욱 필사적으로 달음박질을 치게 된다.
수십만의 무리는 바닷가 낭떠러지에 이르고 선두 그룹은 뒤에서 밀고드는 녀석들에게 떠밀려 절벽 아래로 퐁당퐁당 뛰어 내린다. '집단 투신 자살'이라고 할까.
처음엔 먹이를 찾기 위한 생존의 밀침이었으나 나중엔 그 밀침이 목적이 돼 결국 죽음의 레이스로 끝난다. 파도가 넘실대는 벼랑 끝을 향해 광란의 질주를 벌이는 레밍.
이 동물을 소개한 장본인은 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LA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다.
"한국인들은 레밍, 곧 들쥐의 근성이 있어 누가 파워를 잡게 되면 모두 그 권력자 중심으로 모이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누가 먼저 하면 너도 나도 따라하는 한국인들의 습성을 비꼰 것이다.
동물계에서 가장 신비스런 현상의 하나가 바로 레밍의 습성이다. 이 들쥐는 3~4년을 주기로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먹이를 찾아 대이동을 한다. 방향을 틀 줄 모르고 오로지 줄지어 앞으로만 달리는 단순 동물이다.
선두 그룹이 냅다 뛰면 나머지 쥐들은 '저게 왜 뛰지'하며 '패닉' 곧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진다. 뒤에 선 레밍은 앞 선 무리가 뛰니까 뒤처지지 않으려고 더 뛸 수 밖에 없게 되고 또 이 바람에 앞에 선 그룹은 더 더욱 필사적으로 달음박질을 치게 된다.
수십만의 무리는 바닷가 낭떠러지에 이르고 선두 그룹은 뒤에서 밀고드는 녀석들에게 떠밀려 절벽 아래로 퐁당퐁당 뛰어 내린다. '집단 투신 자살'이라고 할까.
처음엔 먹이를 찾기 위한 생존의 밀침이었으나 나중엔 그 밀침이 목적이 돼 결국 죽음의 레이스로 끝난다. 파도가 넘실대는 벼랑 끝을 향해 광란의 질주를 벌이는 레밍.
'레밍'이라는 동물이 있다.
북 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툰투라나 황야에 서식하는 쥐科의 동물이다.
몇년마다 크게 증식해 이동하므로 나그네 쥐라고도 한다. 레밍은 우두머리쥐를 따라
맹목적으로 달린다.
앞의 쥐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더라도 뒤를 쫓는쥐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고 함께 따라서 죽는다.
"우리는 왜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거지?"
에미가 친구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말이야, 왜냐니? 우리는 레밍이야.
그건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바보 같기는.."
에미의 친구들이 대답했습니다.
"그래? 근데 뛰어내리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건데?"
에미가 계속해서 물었습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겨."
"어떤?"
"글쎄... 우리는 아직 모르지."
친구들은 머뭇거리며 대답했습니다.
"그럼 그게 좋은일이라는 걸 어떻게
알아?"
에미는 친구들의 목소리에 어떤 두려움이
배어 나오는 것을 느끼며 집요하게 캐물었습니다.
에미의 친구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마침내 한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좋은게 틀림없어.아무도 다시는 돌아
오지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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